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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애 살어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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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홍대
구분 추천여행기
제목 천안박물관이 천안 봉선홍경사 창건 100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

최근 들어 더욱더 부모의 올바른 길을 묻는 것 같다. 워낙 일들이 많고 자신의 자식에 대한 예를 하지 않는 사건들이 많아서일까. 부모가 될 자격은 생각보다 많은 것이 필요하다. 성인이 되거나 이성을 만날 수 있는 본능이 있다고 하는 것은 부모가 될 자격이라고 볼 수는 없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성숙해지지도 않고 자식에게 길을 제시할 수 있는 혜안이 생기지도 않는다. 그만큼 부모는 큰 책임과 무게감을 가진 것이다. 



서두에서 부모의 자격을 이야기한 것은 지금 천안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홍경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천안의 봉선홍경사 갈기비는 글을 쓴 적도 있고 저 아래의 사천이라는 도시에서 고려 8대 현종이 아버지와 애틋한 상봉을 했던 길에 대한 이야기도 했었다. 



태조 왕건의 아들 중 대종이 있는데 그의 딸 두 명 헌정왕후와  언니 헌애왕후와 함께 경종의 비가 되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근친이 익숙한 왕실혼인풍습이 있었다. 



그 아들 인종은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이 있었고 아버지 역시 부자의 정이 상당히 두터웠다. 그래서 고려 태조 왕건의 손자이자 고려 8대 왕인 현종이 아버지 왕욱의 뜻을 기리고 여행자들의 편의를 위해 1021년에 지은 사찰이 봉선홍경사다. 지금은 가면 갈기비만 남아 있다. 상당히 큰 대찰이었을 텐데 그 흔적은 없다. 



고려 태조 왕건의 초상도 보인다. 현재 절터에는 당시 절의 창건과 대규모 사찰에 관한 기록만을 담은 국보 제7호 '봉선홍경사 사적 갈비(碣碑)'만이 남아있다. 천안의 성거산, 천흥사, 태조산, 고려태조묘, 유왕골, 마점사지등은 고려 태조와 관련된 지명들이다. 



왕순은 왕욱이 사망하게 된 해인 996년까지 아버지와 함께 사천에서 살았는데  1009년 2월 목종이 강조에 의해 폐립 되자 대신들의 추대에 의해 왕위에 올랐으며 이때 그의 나이 18세에 불과했다고 한다. 



현종은 자신이 왕위에 오른 후 목종 대의 퇴폐적인 분위기를 쇄신하였으며 매년 억울한 누명을 쓴 백성들을 풀어주는 일을 실시했고 일부 특권층의 사치와 낭비를 억제하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현명하게 그를 끌어주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봉선홍경사가 큰 사찰이었음을 예상해볼 수 있는 많은 유물들이 있다. 1,000년이 넘는 세월 속에 아버지에 대한 현종의 사랑이 백성에게도 미쳤다. 



절 이름 앞의 ‘봉선(奉先)’은 불교의 교리를 전하고자 절을 짓기 시작한 고려 안종(安宗)이 그 완성을 보지 못하고 목숨을 다하자, 아들인 현종(顯宗)이 절을 완성한 후 아버지의 뜻을 받든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부모가 될 용기는 세상에서 가장 큰 용기일지 모른다. 용기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일부 부모들이 자식을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사회의 문제를 만들어낸다. 




천안박물관이 천안 봉선홍경사 창건 100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


10월 8일 ~ 12월 31일까지 기획전시실


'천년이 지나도 가치를 더해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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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4-03-28 11:35